그나마 내가 좋아하는 거라고 말할 수 있던 CS(Computer Science)가 요즘은 그다지 재미가 없다. 그렇게 좋아하던 CS가 지금은 그냥 단순히 할줄아는 것중 그나마 잘하는 것일 뿐이 되어 버렸다. 누가 뭐라하던 내가 엄청 잘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기 때문에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오래간만에 Yes24에 들어가서 전공서적과 소설책을 둘러보았다. 한달마다 책을 구입해서 보던 행동을 생각해 보면 지금의Yes24의 배송내역은 지금 내 기분이 어떤지 확인이 가능했다. 어쨋든 오래간만에 책을 지를려고 보니 못보던 책들이 많이 나와 있었다. 이쪽 분야는 열심히 최신자료를 뇌에 업데이트하지 않으면 단어부터가 이해 안되기 때문에 노력이 필요하다. 어차피 최상위 Layer가 바뀌는거지 아래쪽은 거의 안바뀌지만 그렇다고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인생은 한번, 시간은 한방향으로 흐르는데 좋아하는 것만 하고 좋아하는 것만 할 수 있도록 상황을 조작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누구던지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다. “지금하고 있는 것을 긍적적인 사고를 하여 즐겁게 해라.”는 그냥 자기합리화라고 밖에는 생각이 안될 정도이다. 긍정적 사고도 여유가 있을 때나 하는 거지, 지금의 나에게는 그냥 헛소리일 뿐이다. 어차피 해결방법이 없는거 그냥 아무생각하기 싫어서 WOW나 하고 있을 뿐이다. 세상이 수학처럼 명확하면 좋을텐데라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는 이글을 보면서 헛소리를 써놨네 하고 웃을 미래의 나에게 쓰는 글이다. 열심히 해야지.
요즈음 아이티 업계에서 들리는 소리는 내가 느끼기에 거의다가 아이티업계의 환경에대한 이야기가 많다.
대학교에 대해서 커리큘럼이 실무를 잘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라는 말도 많이 나온다. 이 포스텡을 작성하는 시점에서 컴퓨터과학과 대학원생인 내가 생각하기에 두가지 연구 테마로 나뉘는 것 같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기존것을 합치고나 정말 새로운 것을 만드는 등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것이다. 물론 나는 문제해결쪽에서 더 일하고 있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목적은 기존에 일어났던 사건들을 리뷰하여 앞으로 있을 사건의 해결책을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일 것이다. 역사 자체를 연구하는 것과 배우는것은 다른 문제이다. 어쨌든 대학교 컴퓨터과학 커리큘럼은 아마 컴퓨터과학사를 배우는거랑 비슷한 것일 것이다. 예를들면 많은 연구 끝에 집대성된 분야에 대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어떤 문제가 있어서 그것을 해결해왔는지에 대해서 배우는 것이다. 실제로 내가 회사에서 프로그램 만들때 고민했던 문제는 보통 이미 전산학 역사에서 이미 해결됬던 어렵다라던지 어느정도 해결 방향이나 결론은 나와있는 것이였다. 우편물을 자동 구분하기 위한 시스템에서 사람들이 직접 우편번호를 쳐서 구분해주는 부분이 있다. 그러면 각각 사람들에게 어떻게 우편물을 배분해 주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이 나온다면 대기열이론에서 이미 그런 비슷한 문제의 해결책이 제시되고 있다. 번역 프로그램을 가져다쓰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그 프로그램을 만든다면 이는 분명 컴파일러를 만들때 나왔던 해결책이 쓰일 것이다.
이렇듯 사실 프로그래밍 과목이아닌 것들은 기존에 것들이 이렇게 문제를 풀었음을 배우는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다. 그런 주요 과목들이 없어진다고 생각해보자. 보통 한번이라도 공부했던 것들은 기억은 잘 안나더라도 “어느방향으로 찾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의 해답을 제시해준다. 물론 딜레마는 너무 역사에 사로잡혀 새로운 것을 만들기 힘들다는, 생각의 폭이 좁아진다는 문제를 들 수 있겠다. 그래서 가끔씩 쌩뚱맞은 분야의 사람이 컴퓨터과학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경우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대학교가 취업을 위한 관문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아 석사와 같은 다음 학위과정을 준비하는 것이라는 측면으로 생각해 봤을때 무작정 회사에 맞춰서 커리큘럼을 짜라는 것도 좀 생각해볼 문제인 것 같다. 이 세상에서 실무자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연구자도 그 만큼 필요하다. 모든 것을 돈 되는 것만 관심을 가진다면 어떻게 될지 뻔하지 않은가? 너무 회사쪽으로만 끌어가는 것도 연구자들 입장에서는 반론을 제기 할 수 밖에 없다. 물론 현실 자체가 대학교 진학 목표 끝에 취업이 있으니 무시할 수도 없는 것 같다는 이해는된다. 안타깝게도 나는 아직 해결책을 모르겠지만 이러한 점이 있다는 것도 이해를 해 주었으면 좋겠다.
회사 사훈이나 목표만 외우지 말고 자기가 속한 학과나 대학의 목표가 무엇인지도 한번 확인해볼 필요가 있겠다.
발단은 국민학교 4학년 시절로 돌아간다. 아직까지 그 때의 기억이 남아 있는 것은 방과후 수업으로 영어를 들었으며, 20문제중 4문제 밖에 못맞추었던 기억뿐이다. 결론은 시작부터 별로 그다지 나하고 맞지 않았던 것일 지도 모른다. 그리고 중1에서 영어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중1때 만난 영어는 도대체 어떻게 Lee ‘Yeong-Su’라는 단어를 읽어야 할지 가르쳐 주지 않았다. 과외 다니면서 발음기호 못외운다고 손바닥 맞은 기억밖에 없다. 결국 발음기호를 어느정도 외우고 깨달음을 얻었지만 맞으면서 강제로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좋아하는 대상에서 이미 벗어난 것이다. 한때 중1시절 영어 교과서의 챕터 몇개를 본의 아니게 외우기도 했었지만 좋아해서 외운 것은 아니였다. 아직도 기억나는 왠지 어려워 보이고 왠지 외우고 있다는게 멋있게 느껴졌던 단어인 – 프라크티케 라고 외웠던 – ‘Practice’라는 것 정도만이 기억에 남아있다.
그 후 뭐 그다지 쩜쩜쩜을 찍으며 했던 영어는 중3 때 학원에서 한칸 찍고 가게 된다. 그 당시 다녔던 학원 원장님은 영어선생님이였는데 매일 수업 시작하면 문법의 기본이라면서 반복했던 것이였다. ‘S V O C’를 쓰고 S에는 명사,대명사,To부정사,동명사 같은 것이 올 수 있으며… 로 시작되는 세뇌 수준의 문법 수업이였다. 지금의 영어 해석능력은 그 때 그 분 덕택에 얻어진 실력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후 또 쩜쩜쩜을 찍던 영어 실력은 고2 때의 영어과외로 정점을 찍게 된다. ‘밥처럼 먹는 문법’인가 뭔가 하는 책을 마스터 한 나는 여전히 그 문법의 적용 방법이 이해가 안됬지만 어쨋든 실력을 한단계 올리는 기회가 됬던 것 같다. 물론 그러한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 영어 수능 성적은 뒤에서 세는것이 더 빠를 정도 였다. 영어 실력이 대학교의 레벨로 연결되는 더러운 세상… 수학, 과학은 그나마 잘했던 나는 어떻게 수도권 대학은 들어 갔다.
여전히 내 인생을 막던 영어는 대학 졸업 외국어 시험으로 나타나서 괴롭혔다. 졸업토익 시험도 쳐 보았지만 결론은 뭐 마찬가지였다. 다행히도 일어를 잘했던 나는 일어로 어떻게 졸업 외국어 시험은 통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학원에 들어온 나는 또 다시 영어란 시련에 부딪쳐야했다. 당장 내일 또 영어 시험이다.
사실 영어를 좋아할 수 없는 것이 영어 공부하기가 귀찮은 점도 한목 하지만 정말 영어랑은 코드가 안맞는 것 같다. 일본 소설이 무조건 영어로 나왔다면 아마 영어를 잘 했을탠데 아쉽다. 뭐 결국은 내가 노력을 안한 것이 문제이지만, 다른사람은 어떨지 모르겠다.
나에게 있어서 언제나 휴덕은 있었지만 탈덕은 없었던 것 같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담배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담배를 끊는 것이 아니라 안피우는 것이다.”라는 말도 있듯이 “덕질을 끊는 것이 아니라 안하는 것이다”가 맞는 것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의 휴덕 기간은 해군시절의 이병~상병시절… 병장이 7개월이 되다 보니 할 것이 없어서 결국은 다시 돌아왔다. 군대 전역하고는 회사에 다니다 보니 하지 않았다. 복학하고 2년간은 복수전공 크리로 하지 않았다. 학부 마지막 방학 때 결국 할 것이 없어서 다시 돌아왔다. 대학원생인 지금은 다시 원상복귀 되어 버렸다. 아아… 서브컬쳐따위…
어디선가 본 자료에 의하면 지금 하고 있는 취미생활에 더이상 흥미가 없어져서(모든 컨텐츠를 소비해서) 결국은 다른 취미로 이동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 같은 경우에는 포켓몬스터와 비슷한 서브컬쳐같은 경우 더이상 흥미를 느끼지 않게 되어버린 것과 비슷한 것 같다. 아직 덕질이라고 말할 수 있는 범위에 있지만 관심 장르가 변화했다고 보면 맞을 것이다.
이 덕질의 끝은 어디까지일 것인가? 과연 덕질을 그만둘 수 있는 것일까? 시간을 때울 수 있는 무언가 새로운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요즈음 아시다 마나에 제대로 빠져있다. 아시다 마나는 일본 효고현에서 태어나 만 3세 때 조비키즈에 입소하였고 만 6세 때 “Mother(2010)”에 어린 나이에 주연으로 참여하여 “제 65회 The 텔레비전 드라마 아카데미 신인상”을 수상하였다. 일을 위해 효고현과 도쿄를 오가는데 ‘신 요코하마’를 지나는 순간부터 사투리(간사이 벤)는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footnote]Wikipedia[/footnote].오이를 엄청 좋아한다고 한다.
내가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하나의 영화로부터 였다. 그 영화의 이름은 바로 “토끼 드롭스(うさぎドロップ, 2011)”였다. 이 만화를 나름 재미있게 봐서 관심있게 보고 있었는데 때마침 영화가 나온 것이였다. 뭐 그것까지는 그러려니 했다.
그 후, TOEIC성적이 좋지 않게 나와서 충격을 먹은 나는 JPT에 올인하기로 결심하고 방향을 틀었다. 그래서 듣기 능력도 높힐겸 겸사겸사 일드를 검색했는데 때마침 ‘아시다 마나’와 “Mother(2010)”가 눈에 들어 온것이다. 별점도 꽤 높은 편이여서 다운로드 받아서 봤다.
우수한 조류학자였으나, 대학원 졸업 후 별다른 일을 찾지 못한 채, 초등학교 강사 일을 하고 있는 스즈하라 나오(마츠유키 야스코 분). 독.. 더보기
1화를 보고 나서 감동먹은 나는 2일만에 정주행을 해버렸다. 이 아이의 연기는 정말 최고였다. “마더”같은 경우에는 학대를 받고 있는 초등학교 1학년인 미치키 레나(아시다 마나 분)역으로 나온다. 처음에는 레나의 담임선생님으로써 학대 당한 흔적을 발견 하고도 방관자로 있었지만 쓰레기 봉투에 버려진 ‘레나’를 보고 유괴를 결심하게 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이다. “아이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설령 죽임을 당한다해도 버림을 받는다해도 부모를 사랑해요.”라는 부분에서는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레나’같은 경우에는 부모에게 그렇게 학대를 당하면서도 부모를 감싸주는 모습을 보였다. 그 주인공 여성(스즈하라 나오)의 경우 부모에게 버려졌다라고 하는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부분에서가 다 감동적이라서 어느 부분을 이야기해야할지 모르겠지다. 크게 마지막화의 끝부분(해어지는 부분), 나오가 경찰에 잡히는 부분, 츠구미(=미치키 레나)가 한번더 유괴해달라고 하는 부분, 진짜 엄마와 다시 만났을 때 거부하는 부분, 나오가 궁지에 몰린 것을 보고 나오를 지키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기전에 보낸 편지와 그것을 보고 찾아나서 나오와 츠구미가 다시 만나는 부분.. 특히 이 부분은 경찰이 나오한태 다가서는 것을 보고는 자기 자신이 움직이지 않으면 의심받을 나오를 위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는 부분이다.. 혼자 공부해서 북해도에서 도쿄까지 찾아오는 부분… 이 아이 천재다…
참고로 한국 같은 경우 교사, 보육교사, 의사, 사회복지사 등의 직업을 가진 사람이 아이들이 학대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더라도 방관했을 경우 법적으로 처벌받게 되어 있다. 신고의 의무를 가지고 있다.
그 이후 나는 ‘마나’의 팬이 되었다. 그 이후 다음으로 본 것은 바로 “마루모의 규칙(マルモのおきて, 2011)”이였다. 유치원 7세(만 6세)반으로 “Mother”를 찍을 때에 비하면 젖살도 빠지고 이빨도 새로나고 꽤 변해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귀여운 것은 변함 없다.
40대 독신남성이 친구가 죽고 난 뒤 쌍둥이들을 맡게되면서 벌어지는 가족 홈 드라마! 더보기
마더나 마루모의 규칙 그리고 “마나”가 나온 “고백(2010)”같은 것을 봐도 어린이들에 대한 문제나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일본에서 나오는 것을 느꼈다. 마루모의 규칙 같은 경우는 전혀 피도 이어져 있지 않은 친구의 자식(쌍둥이)을 맡아 키우게 되는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귀찮아 하기도 하고, 아이들을 저렇게 내버려둬도 되는걸까 라는 생각도 들게 하는 부분도 많이 있었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아이들과 함께 한가족이 되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감동을 느꼈다. 현실과의 벽도 직접 보여주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과 현실 사이에 대해서 고민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아이들을 버리고 떠난 어머니가 다시 나타나서 아이들을 대려가는 부분(e10~11)은 꽤 화가 났다. 나는 솔직히 아무리 힘들었던 어쨌던 간에 자식을 버리고 간 이상, 아무리 그 부모가 인정했다고 하더라도 아무리 힘들었다고 해도, 난 아마 인정하지 못할 것 같다. 그 아이를 위해서 바람직 하지도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모르겠다.. 좀 더 생각해봐야 할 문제인 것 같다.
그 이외에도 “안녕 우리들의 유치원(さよならぼくたちのようちえん,2011)”과 “화장실의 신(トイレの神様, 2011)”을 더 봤는데 다른 것과 함께 추후에 또 글을 올릴 예정이다.
이 아이가 나오면 “흥행은 맡겨주세요!”라고 말할 만큼이나 인기가 많다. 더 정이 가는 부분은 바로 ‘카라’의 팬이라는 것이다. 마루모의 규칙SP에서 마나의 생일에 카라가 직접 와서 ‘미스터(카라, 2009)’를 함께 부르고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서 귀여워 죽을 뻔 했다. “마루모리”도 최고니 한번 감상하시라~!
부산 김해 간 경전철이 생겼다고 한다[1]. 거기 기사를 보니 경전철이 생긴것은 참 잘된일 같았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공해가 전혀 없는 전기를 사용한다는 부분이였다. 물론 이전에 버스를 이용했었기 때문에 화석연료가 사용되어서 공해가 발생했을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전기는 공해를 전혀 발생시키지 않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혀라는 말은 좀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내가 알고있는 전기를 만드는 방법 몇가지를 말하자면, 화력, 원자력, 수력, 풍력, 조력, 지열, 바이오, 인력(?), 태양열 및 태양광 등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중 발전설비를 만드는 과정에서의 공해는 무시하더라도 출처가 필요하지만 원자력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원자력이 공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단 방사성 폐기물이 발생된다. 에어콘을 많이 쓰는 겨울에는 화력발전소도 가동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는 더더욱 말할 것도 없다. 물론 친환경 발전 설비도 있다. 이는 자연에서 얻어내는 에너지이다.
그렇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전기가 “전혀” 공해를 발생시키지 않는다고 말하면 어떻게 될까? 전기를 이용하기 위해 제화를 제공 했으니 그냥 써도 된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냥 물 사먹듯이 전기를 쓰게되지 않을까? 저전력 제품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단순히 유지비를 줄이려는 목적으로 만들게 된다면 어떨까? 우리가 전기를 아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전기가 만들어 지는 것도 사실은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도 물론 잘 못지키는 일이지만, 글을 쓰는 사람은 무언가를 주장하기 이전에 간단한 단어 두글자 ‘전혀’라는 것 하나 만으로도 사람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알려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어야만 하고, 글을 읽는 사람은 주장하는 바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거의’와 ‘전부’가 별거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엄청 큰 차이가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1] 김상우 기자, “부산-김해 20년만에 경전철 시대, 오전 5시 개통”, 뉴시스, 2011-09-09